작가 자우녕

문화공간 백지장

 서대문구의 천연・충현동은 인왕산과 안산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언제나 물이 풍부했다. 덕분에 크고 작은 개천이 흐르고 곳곳에는 우물이 있었다. 어느 집 우물이든 그 물은 마을 모두의 젖줄이었다. 물줄기는 우물을 통해 마을과 만나고 사람들의 생수가 되었다.

 이곳의 한 우물터는 일제강점기에 콩나물공장이 되었다. 그리고 얼마 후 식품가공품 공장이 세워졌다. 물줄기가 흐르다 잠시 정거하고 사람과 만나는 곳, 우물. 어느 집 마당에 있든 마을 공용의 생수터인 곳, 그곳에 물을 이용하는 공장이 세워졌어도 우물은 한동안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공유공간이기도 했을 것이다.

 수도가 보급된 탓인가, 우물이 닫혔다. 그 자리에 인쇄공장이 섰다. 재개발계획으로 얼마 전 문을 닫기까지 물줄기가 흐르던 장소에는 글줄기가 흘렀다.

 대낮에도 공장 안은 침침하다. 인쇄물이 사라지고 큰 장비들도 어디론가 빠져나갔다. 매케한 휘발류 냄새만이 빈 곳을 채우고 있다. 하지만 어둠이 눈에 익으면 인쇄공장의 흔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. 벽에 쓰인 뜻 모를 메모들, 벗겨진 포스터, 그리고 기름 자국, 그 밖의 기타 등등. 또 다른 글의 흔적도 있다. 누런 종이에 적힌 빨간 글귀들. 부적이다. 사람이 읽으라고 한 글이 아니라 우물의 정령과 앞마당의 정령과 뒷간의 정령들, 그리고 그곳의 혼령들과 소통하고자 한 흔적들이다.

 전시는 이렇게 특이한 공간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 그 기억들을 소환하고 섞는다. 마치 봉해진 우물 덮개에 뚫린 구멍에 빠져나온 우물 정령의 메시지와 글의 정령의 메시지가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지 모른다.

 전시는 그 터의 기억의 흔적들과 그 속의 정령들, 혼령들, 그곳을 지나쳤던 이들의 그림자들과 만나도록 주선한다. 한데 그 만남은, 만남이 만들어내는 대화는 우물에서 그치지 않는다. 그 속에는 세계가 있다. 즉 ’우물에서 하늘보기‘다.

 

자우녕

비무장사람들 시각예술연구소 연구원

제주도 우도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

개인전 <섬은 상징이 되고 상징은 섬이 된다>

개인전 <Action Reaction> Buinho Associacao, Portugal

IEDF 공식초청 <옥희에게>

예술감독 <이웃하지 않은 이웃> KF갤러리,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

천영동 우물에서 하늘보기
2021.10.16-10.19

PROGRAM

천연동 우물에서 하늘보기

2021.10.16-10.19

​문화공간 백지장